[오! 마이 콤플렉스]_그룹전
by NPO지원센터 / 2019.03.26
<오 마이 콤플렉스>는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다. 타인이 세워놓은 기준에 내 삶의 기준을 맞춰야 하는 현대인의 삶 속에 모든 이에게 사랑 받고 싶다는 강박과 부정적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큰 우리들은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럴싸한 장치들로 자신을 꾸며내야만 마음이 놓인다. 그 과정에서 타인과 세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내가 가진 환경들은 모두 콤플렉스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세상의 시선이나 기준을 신경 쓰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그것들이 인생을 흔들어 지치게 한다면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획일화된 미()의 기준, 도식화된 성공의 기준 속에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개인의 상황은 모두 비루한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오늘의 한국 사회 속에 가진 것 없는 개인의 인생들이 너무 지쳐가고 있다. 사회의 기준과 타인의 시선이 개인의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지표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 이 땅의 한 개인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로서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는 나를 둘러싼 환경으로 설명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Being) 자체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시는 두 파트로 진행된다. 콤플렉스에 대한 일반인들의 사연을 받아 미술 작가가 그만의 스타일로 작품을 만들어 낸 것과 콤플렉스를 주제로 한 9인 작가의 다양한 해석을 드로잉, 사진 등의 작업으로 풀어 낸 것이다. 상처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된다고 한다. 콤플렉스도 그렇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콤플렉스야라고 타인과 세상 앞에 툭 내뱉는 순간, 콤플렉스는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닌 그저 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 순간이 두렵다. 작가와 일반인의 콜라보 작품이나 작가들 개인이 작품 속에는, 모두 자신의 콤플렉스를 세상 앞에 꺼낸다.’는 매우 용기 있는 순간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작품을 마주한 누군가에게 또 다른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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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_ 11. 14()~ 11. 19() 서울시NPO지원센터 

클로징 행사_ 11. 19() 오후2~5

 

 

예호 _ 착한 아이

사람은 장면으로 기억된다.” 라는 말이 있다.

엄마 하면, 굳게 닫힌 엄마의 방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몸이 약한 엄마는 누워서 쉬셔야 했던 날이 많았다. 고작해야 네다섯 살 된 아이였던 나는 아침 일찍 먼저 일어나도 보채지도 않고, 조용히 엄마가 나오길 기다리는 착한 아이였다. 엄마를 찾거나 떼쓰지 않는 나에게 가족들은 항상 착한 아이 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굳게 닫힌 엄마의 방문은 나를 착한 아이로 만들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착한 아이가 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감정이나 표현들을 억압했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장롱은 어린 시절 엄마 대신 강하게 의지했던 기억의 재현이다. 엄마 냄새가 가득한 옷장을 마음껏 흩트려 놓거나 파고들어 잠을 청하는 모습은 어리광 부리고 싶었던 나와의 재회를 유도하고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내면에 숨겨진 얼굴을 드러내는 기록이다.

 

 

 

이형선 _ 숨은 사람 찾기

나는 단점이 참 많다. 아버지 어머니의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작은 체구, 여드름 피부, 예민한 성격, 안 좋은 식습관 등등.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나의 콤플렉스들을 나열해보니 대략 열다섯 개 정도 되었다. 얇은 머리카락, 지성피부, 얇은 팔다리, 작은 체구, 삐뚠 골반, 팔자걸음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콤플렉스들이 존재한다. 나를 포함 대부분의 보통의 사람들은 서너 개 정도, 또는 그 이상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의 초점은 그런 각각의 콤플렉스에 있지 않다. 이 작품에선 사람을 봐주길 바란다. 처음에 이 작품에 대해 떠올렸을 때만해도 사람들이 자신의 콤플렉스를 공개하면서 그 콤플렉스에 대해 당당해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작품을 준비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콤플렉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콤플렉스의 진짜 문제는 그 자체가 아닌 그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또는 사회적인 시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진 속 인물들은 홀로 오롯이 서있다. 아무 비교대상이 없을 때 그 인물은 비로소 그 인물 자체가 된다. 이번 작품엔 작가인 나도 촬영 대상이다. 살면서 혼자 서 있는 나의 전체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항상 키와 덩치가 작은 것이 콤플렉스였는데 저 사진속의 나는 그냥 나 자신이었다. 누구보다 작지도, 못나지도 않았다. 분명 누군가는 그 인물들을 보면서 키가 작네, 머리가 크네, 다리가 굵네, 눈이 작네등 콤플렉스를 찾아내려 애를 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콤플렉스가 아닌 사람을 봐주었으면 한다. 키가 작은 사람, 피부가 안 좋은 사람,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그리고 나처럼 콤플렉스 덩어리인 사람, 그들 모두가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손빛나(루씨손) _ Yellow age

이전 작품에선 위인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춰 달콤 쌉싸름한 청춘을 보낸 인물들의 모습을 노란 과일로 표현했었다. 이번 신작에선 각 인물들이 가졌던 콤플렉스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 시대의 청춘들은 참 아프다. 외부의 요인들로도 힘들지만 자신의 내부적인 갈등 때문에도 힘들다. 그중 한 가지가 콤플렉스이다. 이번 yellow age 시리즈에선 다양한 인물 등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를 표현하고자 했다. 콤플렉스는 외모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 나폴레옹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등등 그 이름도 종류도 참으로 다양할 만큼 많은 청춘들이 흔하게 겪고 있다. 콤플렉스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거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일그러진 현대인의 초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도 위인도 모두 콤플렉스가 있다. 모두가 가지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고 참된 아름다움과 마음의 평화를 갖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싱그러운 과일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다. 나의 그림을 통해 콤플렉스를 겪는 사람들이 위로받고 극복하길 바란다.

 

 

 

정다해 _ BACK

나는 콤플렉스 덩어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작정하고 말한다면 상당할 것이다. 내가 가끔 스스로에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말할 때면 사람들은 많이 의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많이 놀란다. 콤플렉스라고는 모를 것 같은 애티튜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적 자신 없는 것들을 최대한 들키지 않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했다. 왜 그런 고민을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나에겐 나름대로 정말 심각한 고민 중에 하나였다. 그때부터 똑 부러지는 눈초리, 망설임 없이 명료한 말투, 걸을 때 반듯한 어깨와 당당한 걸음걸이는 내가 만든 방패가 되었다. 거기에 타고난 성격 탓에 최소한의 말과 표정 그리고 웃음은 포커페이스를 하는 감을 일찍이 터득하는데 일조 했다. 물론 부작용이 따른다. 나의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나에게서 강함을 당연시하며 기대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속을 제대로 들여다 봐주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만든 단단한 방패가 너무 제구실을 하는 탓이다. 단지 방패일 뿐인데 난 그렇게 늘 당당하고 상처 받지 않을 거 같은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약한 모습을 들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그것만큼이나 상대가 나에게 속을 들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싫어진 것보다 싫어질 거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더 별로인 것처럼 속을 들킬 거 같은 누군가의 얼굴을 보는 것이 싫다. 그 때문에 내 시선이 상대의 얼굴에 머물고 두 눈을 시종일간 바라보며 대화하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시간들을 조금 더 보내고라도 알고 싶은 정말 좋은 상대가 아닌 이상 말이다. 몇 년 전에 생긴 안면그리기콤플렉스는 나의 콤플렉스 중 가장 최근의 것이며 이유도 모른 채 가장 풀기 힘든 콤플렉스였다. 사람의 얼굴을 그리려 하면 울렁거리고 많이 불편해진다. 그릴 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릴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얼굴 하나 똑같이 그리는 것이 뭐가 이리 어려울까 하는 자책과 압박감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제 드는 생각이지만 아마도 상대의 마음을 읽어버리게 되는 것이 두려운 것에서 오는 심리적 어려움 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집중하고 관찰하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벅찬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어느 날부터 사람의 뒤에서 대상을 그려 보았고 그것이 '뒷모습' 그리고 또 다른 작업들의 시작이 되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은 계속 쭉 흘러가면서도 한 번씩 그 크기와 방향은 변한다. 여태 그러했듯이. 그러므로 뒷모습(:BACK)'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모른다. 아직 치유까지는 아니어도 '콤플렉스가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닌 그저 나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항상 두렵다.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작업으로 표현하고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유태욱 _ (CRACK)

자신의 마음 속 수 없는 방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오고가는 그것은 현실에서 비롯된 열등감과 공포감으로 이루어진 정신적인 장치이다. 잊을만하면 다시 찾아오는 기억이 당시의 숨 막히는 서늘한 공기를 지금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결국 그것은, 과거로의 시간에 만들어진 삶의 오류로 범벅돼 있는 것이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것을 회피하거나 받아들여 극복해야 한다지만, 그것과 자신과의 애증관계를 청산하는 건 쉽지 않다. 오히려 그것이 조금씩 정신에서 육체마저 빼앗아 나를 대신하여 현실에 종속되는 것을 보고만 있게 되는 무기력감과 고통만이 죄여올 뿐이다. 그것은 어둠과 그 속에 많은 방들에서 숨어 지내다가 예고 없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매번 긴장한 채로도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도 지내지 못하는 불안한 습성이 만들어졌다.

 

 

 

심은솔 _ 관계

콤플렉스는 현실적인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감정적 관념이다. 그 콤플렉스는 어쩌면 환경이 만들어준 선입견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늘 관계 속에 살아간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그들에 의한 내가 만들어진다. 사회적 환경에 갇힌 우리는 무엇이 진짜 나 인지 혼돈에 쌓인 채 수많은 생각들이 우리를 지배한다.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한 존재다. 내가 누군지 모를 만큼 수많은 가 내 속에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는 타인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이 진짜 나라는 착각에 살아간다. 어쩌면 내가 아닌 나를 나인 듯 붙이고 입히고 덕지덕지 꾸며가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이렇게 비춰진 내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환경으로부터 덕지덕지 꾸미고 만들어진 내 모습은 꿈에서도 종종 나를 괴롭혔다. 나만의 세계가 누군가에게 방해받을 때의 감정은 미친 듯이 솟구쳐 올라 온 신경계가 다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지독한 예민함. 병적인 분노. 주체할 수 없는 이 감정들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인간의 내면엔 여러 방이 있고, 우리는 수많은 방을 돌아다닌다. 그 모습은 실제가 아닌 마치 동화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몬스터 같다. 나는 아무것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작업에 임하고 싶다. 그렇게 순수하게 작업을 할 땐 또 다른 나를 맞이하는 낯선 시간이 된다.

 

 

 

김로사 _ Street carpet (채집된 카펫)

대다수의 나라가 도시를 중심으로 구축되었고, 도시에는 자본, 경제, 노동, 교육, 문화 등 많은 것들이 집약되어 있다. 이러한 도시화 현상은 현대인에게 많은 기회와 선택권을 주고, 사람들은 혜택을 얻기 위해 대도시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 많은 인구가 모여 살기에, 기회와 선택은 제한된다. 그래서 도시인은 풍요로움을 선점하고 더 나은 자본을 지속해서 누리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의 격심한 생존경쟁에 내몰린다. 도시 환경과 사회적 구조에 따라 살아가고,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도시의 삶에 맞춰 목적지를 설정하게 되는 것이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보다는 '어느 길이 성공하는 길인가?' 를 먼저 따진다. 그래서 개인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추고,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도 할 겨를도 없이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의 삶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현대 도시인들을 내적자극이나 외적 자극에 빠르게 반응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추어 살아가게 되어 삶의 본성을 무력화 시키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그들의 계산적인 욕망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콤플렉스로 발현된다. 나는 이러한 생존경쟁의 장소이자 현대인의 삶의 터전인 도시가 콤플렉스(마음의 응어리)를 만들게 되는 요소라고 보고, 현대 도시인의 끊임없이 걸어가고 돌아오는 삶을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행위인 걸음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였다. 작품에서 보이는 방식은 익명적이며, 누구의 흔적인지 알 수 없게 감추어져 모호한 형태를 보인다. 이는 도시라는 거대한 집단 아래에 있는 개인의 가지게 되는 획일적인 행동양식처럼 개인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을 드러내며, 개인은 익명적인 불특정 다수가 되어 도시의 부분으로 자리하여 응어리진 형태로 표현된다.

 

 

 

지형섭(Rio) _ Good bye, Good Boy Syndrome

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착한 아이 증후군)가 강한 사람이었다. 아직 이에 대한 어떤 강박관념이 존재한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참아내고, 주변의 상황에 휘둘려서 무언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를 억제하며 사는 것, 그것이 옳은 삶이라 믿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는 내면의 깊고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많은 것을 뒤로하고, 꽤 오래 갈망했던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나의 그림은 이전의 나를 벗어나 지금의 나를 조금씩 발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어떤 흔적의 일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낙서 드로잉으로 그 흔적을 기록하고 표현한다. 기호나 상징, 이미지화 된 텍스트로 표현하는 이 드로잉들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남기는 것이다. 이번 작업은 그 흔적의 단편이다.

 

 

_ 애니멀! 아나. ? - 역할 콤플렉스시리즈

현대인은 모두 각각의 자리에 걸맞은 역할을 강요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 역할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결정되는 염색체의 다름을 기준으로 하는 '남성성, 여성성'일 때도 있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OO 씨의 남편, OO 씨의 부인, OO의 부모'일 때도 있으며, '수험생, 취업준비생, 직장인, 선생님, 자영업자'처럼 처한 위치나 직업에 따라 사회에 의해 부여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보면 성별이나 가족 구성원 같은 태어나는 순간 자연스레 부여받게 되는 '선택 불가능 역할'과 유치원, 학교, 직장 등 선택 결과에 따른 '선택 가능 역할'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두 가지 경우를 종합해 보면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다양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짊어지고 살아간다고 볼 수 있겠네요. 심지어 'OO의 아버지, OO의 할머니'같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은 죽어서도 떼어 낼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결국 현대사회에서 역할이란 반강제성/강제성’, ‘강요’, ‘책임등의 형태를 띠고 많은 사람들에게 콤플렉스와 스트레스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에 <애니멀! 아나. ? -'역할 콤플렉스'시리즈>는 지독한 '역할'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우리의 모습을 동물들에게 투영한 블랙코미디 낙서를 통해 전달합니다.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3.26, 조회수 :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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