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활동가의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 시리즈 3. 호모 심파티쿠스의 비애, 활동가의 감정노동
현안과이슈 / by 이명신 / 2016.05.23

서울시NPO지원센터 기획아카이브

<비영리활동가의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 시리즈3




호모 심파티쿠스의 비애, 활동가의 감정노동


 

 이명신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객원교수, 비영리경영연구소 소장)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맘껏 감정표현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색만 내는 기부자, 단체에 아무런 기여 없이 이름만 달고 있는 이사진들, 시간 채우고 사진 찍으러 오는 자원봉사자들, 하청업체 취급하는 기업과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고집을 신념인 줄 알고 밀어 붙이는 리더와 자기 실속 딱딱 챙기는 얄미운 후배들에게 마구마구 질러 줄 수 있다면.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뭐? 유체이탈)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5가지 감정들은 주인공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불철주야 열심히 일한다. 싫어하는 음식이 나오면 까칠이가 나서고, 긴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는 기쁨이가 나선다. 하키 연습시간에는 상대팀에게 밀리지 않아야 하기에 버럭이의 활약이 중요하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시간에는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모르기에 다섯 감정은 모두 긴장한다. 그렇게 분주한 하루를 마치고 야간 당직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감정들은 숙면을 취한다. 머릿속 감정들은 아무거나 잘못 만졌다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열띤 회의를 거쳐 기분을 컨트롤 하며 각별하게 관리한다. 영화는 “모든 감정에는 존재이유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집단 내에서 다섯 가지 감정들은 활성화되기보다 억제되는 경우가 많아 현대인의 감정 컨트롤 타워는 늘 빨간불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가지 감정들
(* source: http://news.tf.co.kr/read/entertain/1554876.htm)
 

 

  최근 감정노동이 한국 사회 주요한 노동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ur)이란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가 그의 저서 「관리된 마음(1983)」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긴 채 직업적 필요에 따라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텔레마케터, 항공기 승무원, 백화점 판매원 등 고객과의 대면접촉이 높은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감정노동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감정노동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 심한 스트레스로 좌절이나 분노, 적대감을 보이게 되며, 심한 경우엔 정신질환 및 자살까지 갈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OECD 자살률 1위를 12년째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5년간 국내 자살자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주요 전쟁 사망자 수보다 2-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은 1위를 너무 좋아해. 휴~) 자살률은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스트레스와 같은 불안 심리에 큰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통계수치이다. 특히, 20대 여성 중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며, 자살원인으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 및 정신질환을 추정하고 있다. 실제 서울시 120다산콜센터 상담사의 자살 충동과 우울증 등이 일반시민보다 두 배 가량 높다는 결과가 보고된바 있다(한명숙 의원실, 감정노동해결을 위한 전국네트워크 공동설문조사 결과, 2013년). 

 
 

  근로자의 감정노동 문제에 대해 학계를 넘어 정부, 시민사회, 노동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감정노동 종사자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5년 12월 21일 통과된 서울시 감정노동 조례가 2016년 1월 7일 공포되었다. 서울시 감정노동 조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감정노동 문제를 제도화한 것이다. 올해 3월 고용노동부도 “감정노동에 의한 정신질병 산재 인정기준이 확대된다”고 발표하였다.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는 정신질환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외에 ‘적응장애’와 ‘우울병 에피소드’가 추가된 것이다. 참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다. 

 
 

  감정노동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는 활동가들의 감정노동 사정은 어떨까. 비영리조직의 모든 범주가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군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2013년 4월 30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발표한 감정노동의 직업별 실태에서 사회복지사는 “감정노동을 많이 하는 30개 직업” 중 19위로 나타났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태조사 주제로 "사회복지사의 인권문제"를 선정하여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사회복지사가 인권보호의 일선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처우는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조사결과 사회복지사는 전형적인 감정노동자의 고충을 겪고 있었다. 사회복지공무원의 약 80%가 주민 폭언을 경험하였고 그 중 17%는 신체 폭행 사례도 증언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저임금, 고강도 노동의 악조건 속에서 사회복지사들은 성희롱, 폭력, 협박, 정신적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활동가들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상대해야 하는 비영리조직의 특성상 클라이언트, 기부자, 자원봉사자, 상사, 동료들과 갈등을 겪으며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감정노동은 활동가들의 직무만족 및 정신적 건강 등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감정노동을 일과 삶의 균형 차원에서 다루는 연구들에 따르면, 감정노동 수행과정에서 경험하는 부정적인 감정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직장-가정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고, 직무요구로서의 감정노동과 직장-가정 갈등 경험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구성원이 지각하는 직무 스트레스와 소진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고 본다(박상언・신다혜, 2011).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육체적·정신적·사회적·영적으로 안녕한 상태’로 정의하는데, 활동가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며 육체적·정신적·사회적·영적으로 안녕하기는 물리적으로 매우 어려워 보인다. 유럽은 감정노동을 미래사회 건강을 위협하는 심리적 요인 중 하나로 꼽고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접근한다. 독일은 "노동세계에서의 심리적 건강을 위한 공동 선언"을 노사정이 함께 선언하였고, 미국, 호주,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도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다양한 법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국내도 제도적 노력과 더불어 개별 기업차원에서 혹은 노사차원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NS홈쇼핑은 성희롱이나 폭언을 하는 소비자의 발신번호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화이트시스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애경산업은 강성 클레임 상담 시 1시간씩 휴식시간을 보장해주고 있고, CJ제일제당은 심한 욕설을 하는 등의 블랙 고객을 분류하고 업무와 무관한 경우 통화 강제 종료도 가능하다.


  비영리조직들도 활동가들의 감정노동을 예방하고 최소화하면서 활동가들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나는 더 힘들게 일하면서 참았다, 요즘 젊은 활동가들은 참을성이 부족하다”제발 이런 말은 그만하자. 먼저는, 활동가들의 감정노동에 대한 개인과 조직의 인식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조직과 직무특성에 맞게 감정노동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하고 감정노동이 개인과 조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보듬어주자. 활동가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취약점을 감지하고 가슴 아파하는 인간, 호모 심파티쿠스(Home sympathicus)다. 그러나, 정작 자신과 동료의 아픔에 대해서는 공감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아동과 청소년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단체에서 활동가들의 인권은 바닥이고, 빈곤계층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에서 활동가와 가족들은 의료비가 없어 건강검진을 못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조직차원에서 보상해주어야 한다. 감정노동을 위한 제도들은 다른 것과 달리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리더와 조직의 공감대만 형성되면 얼마든지 실행하기가 쉽다. 진상고객으로부터 알바생을 지켜주는 일부 사장님들의 에피소드처럼 관심과 배려 그리고 결단만 있다면 활동가들을 감정노동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은 "쉬고 또 쉬어야 창의력이 생긴다"고 말한다. 재임시절 2013년부터 금요일에는 오후 2시까지 근무를 하다가 이것도 겉치레하는 생각이 들어 시민단체 중 최초로 주4일제 근무를 시행했다고 한다. 활동가들의 감정 콘트롤타워의 빨간불을 잠깐 꺼주는 게 어떨까. 지친 활동가가 근무 중 잠깐 커피를 마시고, 동료와 수다를 떨고, 점심 후 산책을 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자.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한 개인이 최선을 발휘한다는 것은 가족(오이코스)이라는 사적인 집단과 도시(폴리스)라는 공적인 집단과의 연관 속에서 완성된다고 믿었다. 활동가들의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의 다섯 가지 감정이 오이코스와 폴리스를 오가며 제대로 작동될 때 개인과 조직,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우리 모두 체감할 것이다.

 


“활동가는 지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활동가들은 감정노동이 많고, 적은 급여로 늘 높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적절히 쉬는 것은 활동의 성패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많은 노동에서 중요한 활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색할 수 있는 멍 때리는 시간 등이 많을 때 의미 있는 활동력이 생긴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 시민펠로우 현장운동시리즈, 시민운동은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직업입니다, 시민펠로우 전진한(2016)

 


* 참고문헌 
박상언・신다혜(2011), 감정노동과 직장-가정 갈등: 직무소진의 두 영향요인에 대한 연구, 인사조직연구, 19(1): 227-266.​

 


 

< 지난 시리즈에 대한 논평 > 


시리즈
1. 행복한 활동가가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2016.04.15.)

 

* 단체 차원의 관심과 노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시스템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면 더 좋겠다. - 김운호(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교수)

 

*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활동가들이 "어머! 이건 내 얘기야!!라며 공감하며 읽었을 것 같다. 활동가의 소진방지를 위해 바쁜 일상에서 일에 대한 중압감을 낮추고 일과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취미활동을 가져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많은 활동가들이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취미는 사치스럽게 느껴진다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활동가들이 일상이 고단해도 삶의 소소한 행복을 사치로 생각하지 않고, 나 또한 누릴 수 있는 감정으로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면 좋겠다. - 임윤정(환경교육센터 사무처장)
 

* 개인 한 명 한 명의 욕구와 행복이 존중될 때, 그 사회공동체의 행복도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존중받아야 할 개인에는 비영리활동가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와 행복을 배제하고 객관화시키는 태도가 더 이상 비영리활동가의 미덕이 될 수는 없다. 이 글을 접한 비영리활동가들이 자신을 포함한 개개인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지혜를 실천하길 바란다. - 김난희(스위치온 대표, 소셜 퍼실리테이터)


시리즈2.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하루하루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2016.05.02)


* 우리 활동가들은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건네주는 사람이고, 우리가 먼저 긍정적이고 즐겁게 삶과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많은 업무와 어려움 속에서 '나 자신'의 삶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낄 때 많은 고민(특히 '이걸 때려쳐야 하나')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도 꼭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에, 이렇게 바둥바둥 버텨가고 있다. 이 열정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고 오래가도록 활동가들이 즐겁게 삶과 일을 마주볼 수 있으면 좋겠다. - 김래영(성남이로운재단 사무국원)

* 필자는 ‘인권’과’환경’ 등 ‘더 나은 삶의 변화’를 위해 일 하고 있는 NGO활동가가 역설적으로 놓치고 있는 삶의 ‘질’과 ‘균형’에 대해 따끔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고도로 성장한 한국사회에서 영리와 비영리를 막론하고 스스로 ‘일’을 ‘삶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삶을 존중하거나 배려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스스로의 자각에서 출발하여 ‘조직적 수준’과 ‘사회적 수준’으로 전개 될 내용이 궁금함과 동시에 퇴근 시간이 좀 지난 지금 어서 몸을 움직여 소풍 다녀 온 딸에게 가봐야겠다. - 이준모(컨선월드와이드 한국대표)
 



이명신(다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열망 넘치는 조직과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
이 삶의 미션이다.

CSR/CSV, 섹터 간 파트너십, 민관협력(거버넌스), 리더십, 전략경영, 성과평가, 소셜임팩트, 일가정양립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리와 비영리를 넘나들며 강의, 교육, 컨설팅, 연구 등을 하고 있다.

이메일 : dawn2010@naver.com
페이스북
: Myung-Sin Yi (이명신)

 

 

 

 

첨부파일


작성자 : 이명신, 작성일 : 2016.05.23, 조회수 : 1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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