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19. 요즘 담배자판기 본 적 있으신가요?
스토리 / by NPO지원센터 / 2019.04.09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동네의 문제를 먼저 바라보다 

 

1991년은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의회가 다시 부활한 해입니다. 독재 정치를 끝내고 30년 만에 풀뿌리 정치가 시작된 의미 있는 사건이었지만, 전국의 시군구 기초의회 방청석은 텅 비어있고, 주민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하는 일을 남의 일처럼 여겼습니다. 하지만, 부천시 지역은 조금 달랐습니다. 

의회가 열리는 날이면 의원들보다 먼저 나와 방청석을 지키며 의원들의 말을 듣고 시 공무원들의 답변을 기록하는 열혈 시민들이 있었는데요. 이들은 바로 '부천YMCA 의정지기단'이었습니다. 부천YMCA는 여성과 주부가 운동에 앞장섰는데요. 그 중 의정지기단은 마을과 우리 생활을 지키자는 뜻을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였습니다. 

부천YMCA 의정지기단은 부천시를 교육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교육 환경을 점검하며 필요한 것들을 채워나가기로 했습니다. 청소년상담실 자원봉사자 모임인 '디딤돌 어머니모임'이 중심이 되어 청소년들의 환경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흡연, 그 원인은? 

청소년들의 흡연율이 무시할 정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파악한 디딤돌어머니모임은 그 원인을 조사하기에 나섭니다. 청소년들의 흡연은 다시 말하면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팔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조사 결과 학교 주변에 담배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모임은 24시간 조를 짜서 담배 자판기 주변에서 누가 담배 자판기를 이용하는지 밤새워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23.6%가 청소년들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1991년 담배 자판기에 대한 한겨레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때부터, 담배 자판기 퇴치를 위한 엄마들의 행동이 시작됩니다. 

[담배 자판기 퇴치를 위한 노력의 성과]



담배 자판기는 왜 생기게 되었을까 

 

담배 자판기는 수입 담배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보급되었습니다. 1986년에서야 수입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요. 수입 초기에는 수입 담배를 '양담배'라고 부르며 양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매국노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산 담배 회사들은 국민의식 때문에 판매율이 떨어지는 것을 대비해 담배 자판기를 만들어 여기저기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대하지 않고 맘껏 수입 담배를 살 수 있으니 담배를 사면서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죠. 


부작용은 누구나 담배를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수입 담배 자판기가 여기저기 놓이게 되자 국산 담배를 취급하는 담배인삼공사(현 KT&G)도 자판기를 만들어 골목에 들여놓기 시작합니다. 이제 어디서나 사람을 만나지 않고 누구나 담배를 쉽게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담배 자판기에 진열된 담배들

담배인삼공사의 독과점 문제나 수입담배 회사와의 과당경쟁은 신자본과 구자본의 싸움이라 할 수 있지만, 이 경쟁은 결국 청소년들이 손쉽게 담배를 사 피울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부천YMCA 의정지기단은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뜻을 모으기로 하고 자유총연맹, 새마을협의회 등 다양한 단체와 함께 손을 잡았습니다.

지역에서 출발한 우리 모두의 문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단체들은 담배 자판기 설치 금지에 대한 조례를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외국의 비슷한 사례를 찾았더니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 논의 중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단체들은 이 내용을 한국에 맞게 정리해 시의회에 제출합니다. 하지만 시의회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담배사업법시행규칙에 따르면 기초단체인 부천시에서만 자판기금지조례를 제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단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담배사업시행규칙보다 더 위에 있는 법인 미성년자보호법과 어긋나는 부분을 찾아내 시의원들에게 엽서를 보내고 직접 찾아가 주민들과 함께 서명운동과 거리캠페인을 펼쳐나갔습니다. 내무부, 법무부, 경찰청, 재무부 등의 정부기관을 찾아가고 의사회와 변호사회도 만났습니다. 결국 1992년 재무부의 시행규칙 개정으로 담배 자동판매기 설치를 제한할 수 있게 됩니다. 

"이로써 담배자동판매기설치금지조례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1992년 7월 26일. 드디어 담배자동판매기설치금지조례가 부천시의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담배자판기설치금지조례는 부천에서 시작해 전북 남원시, 서울시 강남구로 이어졌고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하지만 난관은 또 있었습니다. 당시의 지방자치법은 기초의회가 벌칙을 정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담배 판매회사들은 철거를 거부했고, 서울의 담배 소매업자들은 헌법에 정한 재산권 보장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합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지방자치법에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로써 자치권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순작용을 이끌어냈습니다. 1994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에서는 드디어 기초의회에도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권리를 부과하게 됩니다. 

담배 자판기를 금지하겠다는 지역의 현안을 통해 국가의 큰 법안을 고치게 된 것입니다. 내 주변 생활에 집중해 하나씩 고쳐나가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법의 빈틈을 메꿀 수 있습니다. 지방정부는 우리 삶에 와 닿는 일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고쳐나갈 수 있어요. 지금 여러분의 정부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우리 마을의 일을 이웃들과 함께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볼까요?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신권화정(사단법인 시민 사무국장)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국회지방의회 의정자료 http://clik.nanet.go.kr/index.do

​ 지역별 시민단체 찾기 http://www.civilnet.net/xe/members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4.09, 조회수 :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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